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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Stijl 100주년 기념 시리즈2 – 예술가와 작품 : Piet Mondriaan

De Stijl 100주년 기념 시리즈 그 첫 번째, <De Stijl 소개> 어떠셨나요?

이번에는 두 번째 이야기로, <예술가와 작품들>입니다.

De Stijl(이후 ‘더 스테일’) 운동에 함께 한 예술가들은 많지만, 특히 더 스테일 운동을 이끈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an)과 ‘더 스테일’ 잡지를 만들기 시작한 테오 반 두스부르흐(Theo van Doesburg)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몬드리안’이라고 하면 ‘더 스테일’을, ‘더 스테일’이라고 하면 ‘몬드리안’을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더 스테일의 지속과 발전에 있어서 몬드리안의 기여가 굉장했는데요.  <더 스테일 100주년 기념 시리즈 2 – 예술가와 작품들> 중 첫 번째 이야기로는 더 스테일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피트 몬드리안을 다루고자 합니다.

©2017 The Art Story Foundation.


  • 몬드리안의 초기 작품

피트 몬드리안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서, 암스테르담에 있는 라익스아카데미(Rijksakademie van Beeldende Kunsten)에서 정규교육을 받았는데요. 지금은 아티스트 레지던시로서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된 한국인 입주 아티스트 중 일부를 선발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에서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등 한국과도 11년 째 협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몬드리안은 반 고흐가 태어난 지 24년 후인 1872년에 태어났는데요. 반 고흐가 그린 초기의 작품의 형태와, 인상파 화가의 기법에 흥미를 가지면서 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반 고흐처럼, 몬드리안 역시 점묘화법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서 선명한 색채와 인상적인 화법을 사용했습니다. 정물화, 풍경화 등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이러한 스타일로 그려졌습니다.

© Gemeentemuseum Den Haag

햇빛 속의 풍차(Mill on Sunlight, 1908)

  • 파리로의 이동

20세기 초반의 10년 동안, 몬드리안은 그의 작품에서 변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점묘화법과 입체파의 스타일, 그리고 다른 추상주의의 방법들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911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첫 번째 ‘현대예술그룹’ 전시회에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작품 전시를 보고 난 이후 파리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아방가르드 스타일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함이었는데요. 몬드리안은 피카소와 브라크가 따랐던 스타일과 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복잡함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www.Piet-Mondrian.org

The Flowering Apple Tree, 1912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에서의 엄격한 추상예술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후에 네덜란드의 집을 방문했던 몬드리안은 한동안 전쟁으로 인해 파리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가 네덜란드 집에 머무르는 동안 여태까지 만들어낸 것들과는 다른 접근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구성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엄격한 추상 예술의 형태로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데요. 이 작품들에서는 그는 색과 선의 단순화를 추구했습니다.

©2011 www.Piet-Mondrian.org

Composition No. 10 Pier and Ocean, 1915

  • 더 스테일(De Stijl)의 시작, 파리

전쟁이 끝난 1918년, 몬드리안은 다시 파리로 돌아가서 1938년까지 머무르게 되는데요. 그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테오 반 두스부르흐 등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 바로 ‘더 스테일’ 운동입니다. 이 시기는 그의 긴 아티스트 인생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기이기도 한데요. 1917년에 더 스테일 운동이 생겨나면서, 더 스테일 운동에 함께한 예술가들은 이 미적 원리를 건축, 조각, 유화, 그래픽 아트, 디자인 등으로 확장시켰고 몬드리안 역시 이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1925년, 반 두스부르흐와 그림과 예술 작품에서 대각선의 활용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로 인해서 몬드리안은 더 스테일 그룹을 떠나게 됩니다. 이 두 예술가는 결국은 다른 길을 걸어가기는 하지만, 그들의 더 스테일 운동은 현대의 예술과 삶을 잘 결합시켰고, 이후의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 그리고 그림, 조각, 디자인, 건축에 있어서까지 원색 사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오늘날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더 스테일에 대한 내용은 첫 번째 <De Stijl 소개>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 몬드리안의 시기별 작품들

몬드리안의 시기별 작품들을 통해서 그의 생각과 더 스테일에 대한 내용을 더 자세하게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파리에 도착한 후, 그만의 특색이 담긴 추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1920년대 파리의 환경 속에서, 그는 현대의 극사실주의(Surrealism), 파리 다다이즘(Dada)에 비교할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추상의 방식을 만들어냈습니다. 1920년대 몬드리안의 그림들은, 신조형주의(Neo-Plastic) 표현을 통해 순수함과 조화에 대한 그의 이상을 가장 분명한 표현했습니다.

(Composition with Red Yellow Blue and Black, 1921)

© 2017 Khan Academy

(composition wirh red, blue, and yellow, 1930)

몬드리안은 캔버스를 45도 돌려서, 다이아몬드의 형태의 그림인, ‘lozenge’ 작품을 그리기도 했는데요. 아래의 그림은 1933년에 그려진 Lozenge Composition with Four Yellow Lines입니다.

(Lozenge Composition with Four Yellow Lines, 1933, Gemeentemuseum The Hague)

또한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된 아래의 작품은, 몬드리안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작품 중 하나로, 이 그림은 단지 두 개의 검정색 선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삼각형의 형태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선들은 캔버스의 테두리까지 이어져 있고, 이 그림이 마치 큰 작품의 한 조각인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몬드리안의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Schilderij No. 1: Lozenge with Two Lines and Blue, 1926,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1930년대에 그는 더 얇은 선과 두 겹의 선이 나타나는 ‘이중선’의 형태를 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데요, 간간이 몇 개의 작은 색 형태를 넣기도 했습니다. 두 겹의 선은 특히 몬드리안을 신나게 하는 요소였는데요, 이는 그 두 겹의 선들이 몬드리안의 그림에게 새로운 활력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Composition (No. 1) Gray-Red, 1935, Art Institute Chicago)

  • 런던과 뉴욕

1938년 9월, 몬드리안은 파리를 떠나서 런던으로 갑니다. 이후에 제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가 공격당하고, 1940년에 파리까지 무너지자 그는 런던을 떠나서 뉴욕의 맨하탄으로 가게 됩니다.

몬드리안의 맨하탄 시기 작품들은 아래와 같이 선과 직사각형들로 이루어진 그림이지만, 새로운 형태로 그려졌습니다. 뉴욕에서 빠르고 격렬한 비밥(bebop) 스타일의 최신 재즈 음악을 접하게 되고,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역동성이 몬드리안의 후기 작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추상주의자로서의 또다른 새로운 문을 열게 됩니다. 아래의 그림들을 보면 몬드리안이 생애에 걸쳐 발전시켜온 그의 작업들을 다시 한 번 혁신적인 형태로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www.Piet-Mondrian.org

(New York City, 1942)

(Broadway boogie-woogie, 1943, MoMA)


유명한 화가, 혁신적 예술 그룹의 형성가, 그리고 개혁의 선구자가 된 것에 더불어서, 몬드리안은 또한 많은 글들을 썼고 그의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었습니다. 그의 글들은 신조형주의와, 예술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전반적으로는 추상 예술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몬드리안은 세계 여러 곳에서 활동한 만큼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미국 내 다양한 지역, 또한 프랑스와 영국 등에 걸쳐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는 시각예술과 문화유산의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그의 이름을 딴 ‘몬드리안 펀드(Mondriaan Fonds)’가 있는데요. 네덜란드의 현대 시각 예술과 문화 유산을 프로모션 하기 위해 시각 예술가, 미술관/박물관, 문화예술기관 등에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기금이 있을 정도로, 몬드리안의 네덜란드 내에서와 세계에서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더 스테일 100주년을 기념해서 네덜란드에서 열리고 있는 다양한 행사, 전시들에서도 몬드리안의 작품과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 그의 영향력, 곧 올라올 포스팅인 <더 스테일 100주년 기념 시리즈 3 – 네덜란드에서 열리고 있는 De Stijl 100주년 기념 행사 소개>에서 확인해보세요!

다른 더 스테일 예술가와 작품들은, <더 스테일 100주년 기념 시리즈 2 – 예술가와 작품들> 두 번째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Published by Dutch Cultu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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